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그 특유의 여백, 감정의 결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섬세한 문장들. 그런 감성을 좋아한다. 에세이라고 특별히 다르지 않다. '여행 드롭'은 작가가 여행이라는 행위를 통해 어떻게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어떤 감정의 물결을 느꼈는지를 담담히 써 내려간 책이다. 그래서 제목도 '여행 드롭'. 말하자면 여행의 조각들, 기억의 방울들을 하나씩 톡톡 떨어뜨려 놓은 느낌인 건가.
그녀는 여행을 크게 말하지 않는다. 거창한 장면이나 극적인 사건은 없다. 에쿠니 가오리답게 문장은 매우 간결하고, 또 조용하다. 과장된 표현도 없고, 무언가를 극적으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방 안에 혼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장면, 길을 걷다가 무심코 들른 카페의 커피 맛, 타국의 편의점에서 산 음료수 하나까지도, 그 조용한 기록 속에 감정이 다 녹아 있다. 혼자 떠나는 여행, 아니, 혼자 있는 순간이 자주 등장한다. 그건 고독과는 조금 다르다. 쓸쓸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가볍게 내려앉은 외로움이다.
무언가를 설명하려 하지 않아서 더 좋았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할 뿐인데, 나는 그 문장들 안에서 내 기억을 더듬게 되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분명 느꼈던 순간들. 어쩌면, 여행은 장소보다 마음의 방향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그걸 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아주 많은 걸 말하고 있었던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나면 여행이 꼭 멀리 떠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가까운 거리를 걷거나 단골 카페에 앉아 있는 순간마저도 여행처럼 바라보고 그때의 감상을 나열한다. 일상의 틈에서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들을 붙잡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여행이란 결국 새로운 공간에서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